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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기(2010-08-06 10:49:03, Hit : 4449, Vote : 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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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오의 언어로는 사회 선진화할 수 없다(동생 인터뷰 기사)




ㆍ증오연설죄 입법화 주장 박선기 르완다국제형사재판소 재판관

경상남북도 정도의 면적에 인구 800만 명밖에 안 되는 나라에서 100일 동안 8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 죽고 죽인 사람은 남이 아니라 이웃해서 살던 초등학교 동창, 친구, 직장 동료, 친척 등이었다. 심지어 성직자까지도 살육에 가담했다.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참혹한 범죄가 아무런 죄의식 없이 저질러졌다.




16년 전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르완다에서 일어난 일을 새삼 기억해야 할 까닭이 있다. 제노사이드(집단학살)는 먼 나라의 일이거나 아득한 과거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국격이 높아졌다고 해서, 21세기 첨단 지식정보화 시대라고 해서 그런 야만적인 사태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박선기 르완다국제형사재판소(ICTR) 재판관의 생각이다.

박 재판관의 인터뷰는 충격적이다. 자극적인 표현이나 구체적인 묘사를 피하고 일반론을 편 것이지만 새겨서 들으면 모골이 송연할 지경이다. 그는 2003년 ICTR 재판관에 선출돼 이듬해 부임, 7년째 르완다 제노사이드 범죄자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여름 휴가차 귀국한 그를 7월 2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무법인 대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먼저 ICTR가 어떤 곳인지 설명해 주십시오.
“전통적인 개념으로 형사 관할은 주권의 문제이기 때문에 제3국이나 국제기구에서 특정 국가의 범죄 혐의자를 수사·구속·소추·재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르완다 사태는 너무나 끔찍하고 인류의 평화와 안전을 심각하게 훼손했습니다. 이걸 아무 일 없는 것처럼 그냥 지나간다는 것은 유엔 헌장의 기본 질서와 이념을 깡그리 팽개치는 일이죠. 이런 개념 하에 강제력을 가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1994년 입법해서 창설한 대표적인 국제 형사법원입니다.”

박 재판관이 ICTR를 ‘대표적인 국제 형사법원’이라고 규정한 데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독일 뉘른베르크 및 일본 도쿄 재판소는 제2차 세계대전 전승국이 운영한 전범 재판소다. ICTR는 유엔 기구로서 전쟁범죄뿐 아니라 제노사이드, 반인륜범죄까지 다룬다. ICTR에 앞서 1993년 설치된 유고국제형사재판소(ICTY)도 마찬가지다. 두 기구는 유엔 안보리가 관할하고 있기 때문에 강력한 집행력을 가진다. 2002년 창설된 국제형사재판소(ICC)도 제노사이드, 반인륜범죄, 전쟁범죄, 침략범죄 등을 다루는 상설 국제 형사재판소이긴 하지만 유엔 기구가 아닌 데다 미국·중국·러시아·인도 등 주요국과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가 가입하지 않아 실질적인 역할은 하지 못하고 있다.

ICTR 재판부는 18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돼 있다. 대륙별로 아프리카 6명, 아시아·유럽·아메리카 각 4명이다. 100여 개국에서 온 약 85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본부는 탄자니아 아루샤에 위치해 있다. ICTR는 재판관이 한두 사건 정도를 3년 안에 처리하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3년 미만 판사제도’를 채택하고 있지만, 박 재판관은 주요 사건 및 새로운 사건을 맡는 바람에 7년째 근무하고 있다.

떠날 때 2년 6개월 정도면 재판을 다 마칠 것이라고 했는데, 예상보다 오래 걸리는군요. 얼마나 더 걸릴 것 같습니까.
“원래 유엔 안보리에서 금년 말까지 재판을 종결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7명의 피고인에 대한 심리와 선고를 마쳤고, 올 9월과 연말에 선고할 예정인 사건이 남아있었죠. 그런데 제노사이드 당시 정보 총책이 작년 10월 우간다에서 체포되는 등 새로운 변수가 발생했어요.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500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걸었던 거물이지요. 오늘 아침 이메일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명의의 서한을 받았는데 이 사건이 제게 배당됐거든요. 재판을 올 10월에 시작하는데 그게 1년 정도 더 걸릴 것 같네요.”

재판부는 어떻게 구성됩니까.
“저하고 케냐 판사 한 분, 체코 대법관 한 분, 이렇게 셋이 맡게 됐습니다.”
박 재판관은 22년 동안 군법무관으로 활동한 군사·국방·전쟁 관련 분야의 법 전문가다. 한·미연합사 법무실장과 군법무관으로서 최고위직인 국방부 법무관리관 등을 지내고 2000년 소장으로 예편했다. 그는 2003년 유엔총회에서 세계의 쟁쟁한 후보들을 물리치고 ICTR 재판관에 선출됐다.

6년 동안 르완다 제노사이드 범죄자 재판을 하면서 느낀 가장 중요한 문제의식이 무엇입니까.
“사실은 저도 1990년대 중반에 지구 반대편에서 그런 학살이 있었다는 정도로만 알고 갔어요. 그런데 가서 르완다를 공부하고 재판을 통해 많은 증인, 역사학자, 문헌 등을 접하고 현장을 가보니까 처음에는 사실 자체가 믿어지지가 않더라고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재판을 하면서 많은 부분에 대해 여러 가지 해답을 찾게 되겠더라고요.”
ICTR에서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매일 재판이 열린다. 재판관뿐 아니라 전 세계의 법률가가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세미나와 토론 등이 일상화돼 있다. 각국이 처한 법적·정치적 상황이 공유되면서 문제점과 해결책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장이 되는 셈이다.

르완다 제노사이드 재판 과정에서 새롭거나 특별하게 부각된 문제가 무엇입니까.
“저희 법원이 이룬 여러 성과 중에 가장 큰 것은 이른바 선동행위자, 저희들은 미디어 케이스라고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 의미 있는 판례를 남긴 것입니다. 1994년 4월 6일 제노사이드가 시작되기 1~2년 전부터 라디오, 신문, 대중집회 등을 통해 상대 부족에 대한 언어 테러가 극심해집니다. 우리 법원에서는 제노사이드뿐 아니라 이런 선동적인 언어를 전파한 방송사 사장, 주요 논설자, 정당 지도자 등을 기소해서 1심에서 종신형을 선고했습니다. 2심에 35년 정도로 감형됐는데, 사실상 (재판이) 끝난 겁니다.”

ICTR는 사형 및 감형 제도가 없어 종신형이 최고형이지 않습니까. 매우 중범으로 다룬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고위 지도자, 정당 지도자, 심지어 언론까지 부족에 따라 나뉘어 이를테면 ‘너희들이 한번만 우리를 건드리면 부족의 씨를 남기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국민감정에 증오의 씨를 심어놓은 것이 어떤 계기가 되니까 그 증오의 마귀가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감싸거든요. 르완다 감옥소에 있는 젊은이들이 증언하는 걸 들어보면 대부분이 그럽니다. 제노사이드가 벌어진 약 3개월 동안 자기들은 지하드(성전)를 하는 것 같았다는 거예요. 사람을 죽이는 것, 그것도 잔인하게 죽이는 것이 마치 성스러운 의무인 것처럼 말입니다.”
르완다 제노사이드의 경우 일종의 증오범죄(hate crime)라고 할 수 있다. 증오범죄는 인종·민족·종교·성적 편견에서 비롯된 이유 없는 증오심을 갖고 테러를 가하는 범죄를 말한다. ICTR는 증오범죄의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증오연설(hate speech)’이라고 보고 이를 엄격하게 다루고 있다.




증오연설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제가 죽 조사를 해보니까 개념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그 나라의 역사나 처한 상황에 따르는 것이니까요. 기본적으로는 종교·종족·국적·인종·사상·이념·지역·성별, 최근에는 게이와 같은 성적 그룹 등을 대상으로 특정 개인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 대한 증오와 폭력을 조장하는 말과 글, 또는 영상물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ICTR 법정은 이러한 증오연설을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혐오스런 범죄인 제노사이드의 한 유형으로 취급하고 있다. 르완다의 경우에서 보듯이 증오를 조장하는 지도자의 선동이 민초들을 살인 도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증오연설은 그것이 실제 범죄행위로 이어지느냐와 관계없이 죄가 성립된다.

증오연설에 대해 ICTR 법정이 내린 판결에 대한 세계 형사법계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ITCR의 미디어 케이스를 유럽연합(EU) 법정에서는 굉장히 많이 원용을 합니다. 물론 그 이전인 1990년대 전반부터는 증오연설에 대해 각 나라에서 형법화하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모든 EU 국가,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 미국, 캐나다 등 많은 나라가 이미 입법화를 했고, 더욱 강화하는 추세입니다. ICTR의 판례는 증오연설에 대한 엄중한 태도를 판례로서 공고히 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라든가 언론의 자유와 충돌할 소지는 없습니까.
“법원에 가면 굉장히 다투게 되는 부분이죠. EU 국가는 전통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중요한 시민의 기본권 중에서도 맨 위에 올려놓잖습니까. 제가 영국 변호사한테 물어봤더니 자기네들은 고문 금지 같은 건 ‘절대적인 자유’이지만 언론의 자유는 ‘상대적 자유’라고 보고 판결을 내린답니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나왔을 때 유·무죄를 언론의 자유와 관련해 법원에서 굉장히 신중하게 판단하더라도 그것이 입법화되고 국민에게 홍보됨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언어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조심하게 된다는 거죠.”

실제로 그런 긍정적 효과가 나타난 사례가 있습니까.
“2008년 케냐 대통령 선거 후유증으로 약 1500명이 죽었을 때 감명한 일이 있어요. 케냐 지도자들을 유심히 봤죠. 굉장히 자제를 시키고 험악한 말을 안 해요. 국회에 가서 토론하고 호텔에 투숙해 어떻게 사태를 진정시킬까를 논의하고…. 그 과정에서 민중들을 흥분시킬 말을 절대 하지 않더라고요. 결국 권력을 나누는 쪽으로 가서 연립정부를 구성했죠. 르완다 학습 효과가 상당히 작용한 결과라고 봅니다.”

아프리카에서 빈발하는 부족 간의 충돌에 의한 참극의 원인은 증오연설에도 있겠지만 뿌리 깊은 ‘부족주의’에도 있지 않을까요.
“저도 한국에 있을 때는 그렇게 생각한 점이 없지 않아요. 지금은 부족주의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이용하는 소수가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을 6년 동안 접하면서 느낀 점은 그들이 매우 순수하다는 겁니다. 정치인은 권력을 잡기 위해, 가진 사람은 그걸 놓치지 않거나 더 가지기 위해 부족주의를 부추기는 거죠.”
ICTR가 르완다 제노사이드 재판을 통해 증오연설을 엄격하게 취급한 점 외에 여성을 전쟁의 전술이나 전략의 일환으로 강간 등 성폭행하는 범죄를 처음으로 제노사이드로 다뤘다. 또 하나는 상급자 책임의 범위를 넓히고 강하게 처벌한 점이다. 상급자의 범위에는 법률적 상급자뿐 아니라 실질적 상급자도 포함시켰다. 즉 신부 같은 종교인이라고 하더라도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졌다면 상급자로 취급한 것이다. 박 재판관은 이 세 부분이 ICTR가 남긴 가장 대표적인 진보적 판례라고 평가했다.

특히 증오연설은 세계적으로 입법화되거나 강화되는 추세인데, 우리나라에도 입법화가 필요하다고 봅니까.
“르완다 사태와 같은 사건은 르완다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슬람 국가에서도 일어나고요. 특히 가까운 장래에 통일이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2800만 동포가 어느 날 갑자기 이 사회에 편입할 텐데 그들이 얼마나 상처를 받겠습니까. 그들을 겨냥하거나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사람들을 부추기는 사태가 벌어지면 굉장한 혼란이 생기겠죠. 경제적 통일비용보다 더 무서운 게 그겁니다. 르완다에서 왜 어느 날 갑자기 젊은이들이 돌변해서 살인마가 됐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 증오연설이 부른 사건이라든가 증오범죄의 실례를 든다면 어떤 게 있겠습니까.
“언어폭력이 극심한 것은 있지만 큰 갈등은 없었죠. 그러나 이런 언어폭력이 쌓이다가 어느 날 갈등구조가 생기는 큰 사건이 나면 그게 에스컬레이트되어 통제가 안 되거든요. 지금 좌든 우든 쏟아내는 말들이 얼마나 험악합니까. ‘○○도 놈’ ‘빨갱이’ ‘보수꼴통’… 이런 게 증오연설이거든요. 개인을 보지 않고 어떤 지역이나 그룹을 통틀어 묶어서 허위의 증오를 씌우거나 모욕적인 상표를 만들어 붙이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증오범죄나 제노사이드 같은 게 먼 나라 얘기가 아닐 수도 있겠네요.
“우리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마약, 해적, 제노사이드, 테러 같은 범죄에는 국경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정치세력뿐 아니라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종교단체라든가 시민단체가 많지 않습니까. 표를 얻고 포교를 하고 주의·주장을 펴는 과정에서 유혹이 많거든요. 갈등구조 속을 파고들어 부추기면 한 그룹을 통째로 열혈지지자로 만들 수 있어요. 말 한 마디로 백만 대군을 얻는 거잖아요. (증오연설에 대한) 유혹이 늘 있는 거죠.”

그렇더라도 말을 법으로 규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유럽 사람들도 문제가 많다고 해요. 그렇지만 최소한 예방 효과는 분명히 있다는 거예요. 실제로 그런 부추김에 의해서 테러를 감행하는 젊은이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입법에 대한 현실적 필요성도 있는 것이고요.”
박 재판관의 우려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의 언어 폭력성은 도를 넘어선 듯하다. 정파, 이념, 사상, 지역, 계층, 성별, 집단 등 갈등구조가 내재한 곳마다 증오가 배설되고 있는 느낌이다. 그는 르완다 제노사이드가 전 인류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지금 우리는 다변화한 사회, 이익이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실시간으로 조화하고 충돌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전통사회와 달리 그런 충돌과 갈등을 조화·순화시키는 사회적 메커니즘이 필요합니다. 사회 지도그룹, 언론, 사회단체가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합니다. 증오의 언어로서는 우리 사회가 결코 선진화할 수 없습니다.”


기사출처:위클리경향2010.8.10  박선기 ICTR 재판간 인터뷰 기사
<글·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원문기사 URL :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008041414331&code=115




pigko (2010-08-06 12:52:34)
ICTR의 소중한 경험과 깊은 경륜으로 인류사회의 진정한 진보를 위한 통찰이 담긴 인터뷰 내용입니다. 증오를 대중적으로 선동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악함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각성하게 됩니다. 박재판관의 철학과 노력에 격려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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